하용조목사 그의 숨가빴던 삶
2011년8월2일 이 땅에서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숨가쁘게 살았던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인 하용조 목사의 소천 소식이 온 땅을 슬프게 하였다. 하나님 나라에 가셨지만 아직은 그분이 하실 일이 많이 있기에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하용조 목사는 출석교회의 담임목사님(홍성욱 목사)이 2003년 8월에 오시면서 알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 해로 기억되는데 새봄복음축제 때 한국 교회의 가장 선두에서 이끄시는 목사님들을 초빙하여 집회를 가졌던 일이 기억이 된다. 그 때 지금 고인이 되신 옥한흠 목사, 그리고 분당 지구촌 교회의 이동원 목사, 사랑의 교회의 오정현 목사 등과 같이 오셔서 집회를 인도했었기에 그 당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담임목사님으로부터 평생을 병마에 시달리시면서도 하나님 일에는 누구 못지않게 열정을 불태우셨던 분이라고 들었던 것이다. 근래에도 담임 목사님은 하용조 목사님과 가깝게 지내셨기에 그분의 소천소식은 나 역시 우울하게 만들었다. 오래 전 처가의 조카 남매가 결혼을 하게 되어서 그 때 남매가 합동으로 결혼을 하였는데 그 장소가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 교회였고 하용조 목사님이 주례를 서게 되어 그 당시 처음으로 멀리서 뵙기도 하였다.
하용조 목사가 설립한 두란노서원은 기독교 서점에 가면 아예 한 코너로 자리 잡고 있어서 알고 있고 집에도 두란노 서원에서 나온 책이 있는데 ‘닉부이치치의 허그’ ‘긍정의 힘’ ‘특종 믿음 사건’ ‘비전 성경사전’ 등이 있다 그리고 출석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저술한 ‘교회만이 희망이다’ ‘ 우리가 꿈꾸는 교회’ 가 있고 월간으로 나오는 ‘생명의 삶’과 ‘빛과 소금’ 도 가끔 찾아보기도 한다. 성경 역시 두란노 서원에서 나온 ‘비전 성경’을 갖고 있다. 2005년에는 두란노 아버지 학교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가정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시금 알게 되기도 하였다.
온누리교회는 출석하는 교회는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까운 교회 같다. 지금 출석하는 교회와 많이 교류하고 있는 교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교회에서는 열리는 특별집회 때 타 교회의 담임목사 등이 와서 인도하시는데 그 중 오는 교회가 사랑의 교회, 분당 지구촌교회, 명성교회, 베다니교회, 순복음교회, 수원성결교회 등이다.
하용조 목사의 살아온 길을 찾아보았다. 그는 1946.09.20 평남 진남포에서 출생하였으며 건국대학교에 진학하고 3학년 때 폐결핵이 발병하여 그의 마음이 변화하여 믿음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CCC활동을 하게 된다. CCC에서 간 여름수련회 때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고 그 이후 CCC간사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 때 서울의 한 쪽방에서 힘없이 소외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밤새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한명 한명에게 써서 전해주며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전하였다. 그는 대학 재학 시에 영적 멘토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김용기장로(1909-1988 가나안 농군학교 창설자)로 그는 “그 분에게 배운 건 나의 청소년기를 지배했던 이광수 소설의 감동과는 견줄 수 없는 교훈이었다”라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김용기 장로는 일하면서 죽는 것이 소원이다 하고 실제로 강의를 하다가 강단에서 소천하였다. 하목사님은 “그분처럼 사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라고 하였으며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날도 강대상에 나가 설교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던 것이다.
CCC간사로 7년 간 활동한 후 1972년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며 마포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74년 연예인 교회를 설립하고 1976년 예장통합교단인 목포노회에서 안수를 받게되고 바로 연예인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게 된다. 하용조목사는 연예인에 대하여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 그들이 복음전파에 가장 중요한 일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예견하신 것 같다. 그래서 연예인교회를 만들고 방송국마다 찾아다니며 연예인들을 만났다. 지금도 비슷하겠지만 부족함이 별로 없는 연예인들이었기에 하용조 목사님이 방송국에 찾아가면 서로 피하기에 바빴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벌어진 연예인 스캔들, 대마초, 뇌물 사건등으로 방송가에서 쫓겨난 연예인들이 그를 찾아와서 목사님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게 되고 목사님은 그들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 대 성경굥부 등에 참여하였던 연예인은 윤복희, 방은미, 쿨시스터스, 구봉서, 곽규석 등이었다. 가수 윤복희는 지금 온누리교회에서 권사로 주님을 섬기고 있고 가수 윤형주는 장로로 시무하고 있다. 지금도 목사님의 영향이 상당히 차지하였겠지만 ‘문미엔’이란 그룹이 있는데 이는 문화, 미디어, 엔터테이먼트에 종사하는 청년 기독교 모임이다. 이 모임에는 슈퍼주니어의 최시원, 소녀시대의 윤아, 티파니, 효연 2NEI의 공민지, 려원, 박예진, 성유리, 이진, 이서진, 정준, 김수현, 소이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1980년 두란노 서원을 설립한 해에 간경화가 발병되어 그 당시 시무하던 연예인 교회를 사임하고 영국으로 출국하여 선교사훈련을 받게 된다, 그리고 1985년 귀국하여 서울 한남동 기독선교원에서 12가정이 모여 기도한 것을 모태로 용산구 서빙고동에 온누리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그 이후 계속 부흥 성장하여 현재 양재, 부천, 수원, 대전 등에 9개 성전이 있으며 25개의 비전교회 그리고 교인 75,000명의 대형교회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그는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꾸며 2,000명의 선교사와 1만 명의 평신도 사역자를 세우겠다는 2,000/1만 사역을 목표로 삼았고 선교방송과 교회설립을 통한 ACTS29 운동으로 국내외선교에 힘썼으며 현재 1,22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그는 또한 집필활동도 활발히 하여 두란노서원을 통하여 150여편의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총장으로 재임하기도 하였다.
하용조 목사는 온갖 병마에 시달렸다. 그는 대학 때 폐결핵의 시작으로 평생을 병과 함께 살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는 근래도 주 3회의 인공투석을 하였으며 당뇨, 고혈압, 간염, 간경화, 간암, 신부전증, 심근경색, 부정맥 등의 병은 그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본인도 자신은 부상병동이라고 하며 사람들은 그를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 병마 가운데서도 단에서는 열정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여 오뚜기목사라는 별칭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이 병마에 대하여 사람들이 이야기 하면 의연하게 대처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으며 그는 2010년 희망전도사라 불리는 팔다리가 없는 닉부이치치와의 대담에서 “처음엔 하나님이 내 병 쯤은 쉽게 고쳐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랜 세월 아프면서 하나님의 섭리, 비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깨달았어요. 저는 지금의 아픔을 엔조이하게 되었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는 7월31일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아픔은 축복입니다. 고통은 나에게 깨달음을 줍니다. 밤이 낮을 알게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하였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대 찾은 이들에게 “아픈 것이 은혜다.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 올 때는 아프다. 그러나 투석 받는 4시간 동안은 행복하다. 내게 QT (Quit Time)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플 때마다 교회가 성장한다. 참 이상하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영적 충만을 경험한다. 병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고 아픈 사람에 대한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라고 담담하게 이야기 하였다.
그는 마태복음 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는 말씀을 자주 인용하였다고 한다.
하용조 목사는 트위터로도 많은 말을 남겼다 그 중 가장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트위터의 글에는 “바쁘다는 것과 피곤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아무리 바빠도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신이 나지요. 그러나 의무적으로 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면 바쁘지 않더라도 피곤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쁘지만 즐겁고 재미있고 흥분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바쁘게 사십시오” 그는 2007년 일본에서 전도집회 러브소나타를 주관하기도 하였는데 그 당시 25,000여명의 일본인이 참여하여 5,000명이 주님을 영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970년대에 개신교 논쟁의 화두가 되기도 한 논리를 펼쳤던 무신론자였던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일본 러브소나타에서 하용조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하나님을 갖은 논리를 펴서 거부하던 이어령 박사가 하나님을 영접한 사건은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것도 하용조 목사를 통하여 일어나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용조 목사 등 많은 사람들을 도구로 쓰셔서 역사하신 일이다.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도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하용조 목사는 정계, 경제계, 교계, 방송, 연예, 스포츠, 학계 등 많은 분야의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었다. 프로야구선수 박찬호는 신앙생활을 잘하지 않는 것 같지만 하용조 목사를 통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최경주 프로 골퍼는 미국에 있다가 하영조 목사의 소천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을 하였다고 하며 정몽준 의원은 2003년 어려울 때 하용조 목사에게 가서 성경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과 동서지간이기도 하다.
용산구 서빙고동에 위치한 온누리교회의 두란노홀에 마련된 빈소에는 각계의 인사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특히 많은 연예인, 스포츠인들(최시원, 추상미, 윤종신, 엄지원, 유선, 김진욱, 노사연, 박미선, 심은하, 윤복희, 이성미, 이윤미, 주영훈, 소희, 린, 신현준, 최경주, 이영표 등) 이 보였다고 한다.
연예인 등 많은 사람들이 한 이야기들을 모아 보았다.
-.전문화부장관 이어령: “고인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고 가셨다.”
-.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 “제자훈련과 성령운동을 통해 한국교회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하목사의 소천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사랑하는 친구 하용조 목사의 마지막 영원으로 떠나는 순간을 곁에서 지킬 수 있어서 감사했다.” “브레이크를 써보지 못한 채 계속 질주하셨던 하용조 목사님 이젠 안식 속에 들어갔다.”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 “가슴이 무너진다. 세계의 끝 사막과 오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어떤 수고도 아끼지 않았던 목사님의 선지자적 열정은 한국교회의 귀감이었다. 선하고 긍정적이며 비전의 지도자였다. 목사님의 화사한 미소가 너무나 그립다.”
-.티아라 소연: “제가 가장 힘들 때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나 큰 힘이 되었고 저에게 새마음과 새행복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 곁으로 가신 일이지만 세상에 남아있는 저희는 마음이 아픕니다. 기도할거에요 계속,,”
-.가수 이정: “따뜻한 기도와 말씀을 해주셨던 하용조 목사님 하늘나라에서 아프지도 마시고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했습니다.”
-.배우 한혜진: “사랑하는 하목사님 편히 쉬세요. 너무너무 보고 싶을 거에요. 그 사랑 잊지 못할 거에요”
-‘지선아 사랑해’의 이지선: “하목사님 주님 곁에 가셨으니 좋으시겠지만 우리는 너무 슬픕니다. 지금은 감사를 드리기엔 너무나 슬픕니다.”
-.배우 유선: “하용조 목사님 너무나 거룩하게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 가신 당신을 우리는 잊지 못할 겁니다”
-.서울극장 대표 고은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 찬 분”
-.프로골퍼 최경주: “힘들고 지칠 때마다 목사님은 기도로 나를 지탱해 준 분”
-.정몽준 의원: “2003년 무척 어려울 때 목사님께서 나를 불러 주셔서 아침마다 교회에서 아내와 성경공부를 했다”
하용조 목사 그는 2011년8월2일 아침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소천하였다. ‘기도하면 행복해집니다’ ‘설교사전’ ‘행복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 ‘나는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 ;예수님은 가쁨입니다, 사랑입니다, 승리입니다, 생명입니다, 능력입니다‘등 그의 150여 편의 저서에는 그의 철학 그리고 그의 선교 비전이 담겨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하여 바쁘게만 살다 하나님께 안기신 하용조 목사의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직접 뵙지는 못하고 간접적으로 뵈었지만 그의 삶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선교 비전에 모든 것을 다하고 지치고 고단한 영혼들을 위하여 아픈 육신을 딛고 일어서며 열정을 다하였던 정말 숨가쁘게 사시다 천국으로가신
하용조 목사님을 위하여 기도한다 .
-유병수-
[출처] 하용조목사 그의 숨가빴던 삶|작성자 아침바다
'추모 다시한번 기억하는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기철 목사님 마지막 설교원고|◈″``°³о☆說敎,例話자료 (0) | 2017.03.13 |
---|---|
루즈벨트의 섬김 (0) | 2015.09.12 |
김준곤목사님의 딸의 죽음에 대한 애끓은 사랑의 고백 (0) | 2014.06.03 |
"땅끝의 아이들 저자" 이민아 목사의 삶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 딸) (0) | 2014.06.03 |
아름다운 삶과 신앙 -강영우 박사- (0) | 2014.04.11 |